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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0
[칼럼] 정의연 기부금, 본질 꿰뚫기 4. (황신애 상임이사, 한국모금가협회)
2020/05/22

[칼럼] 정의연 기부금, 본질 꿰뚫기 3. (황신애 상임이사, 한국모금가협회)

꼭지 1. 비영리에 대한 간단한 이해

 

비영리 투명성에 대해 회계기준과 외부감사 도입이라는 성급한 처방을 내리면 안 되는 이유가 있다. 그것으로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현실들이 있기 때문이다. 비영리의 사정을 외면하고 접근하는 투명성 제도는 그 부당함이 공장장이 기계가 마모되었든 가스가 터지든 재료에 문제가 있든 내 알바 아니고 그저 목표물량만 채우라고 하는 거나 진배없다.

 

기업은 돈을 많이 벌면 최고다. 가끔 기업윤리 문제가 불거진다고 해도 역시 돈만 있으면 어느 정도 해결된다(기업 관계자는 지나친 단순화에 불편할 수 있겠지만 비교를 위한 것으로 이해하기 바란다).

 

비영리는 양파 같다. 까도 까도 계속 새롭다. 너무 제각각이라 한 단체를 얼핏보고 이렇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일렬로 세워 놓고 비교하기도 어렵다. 우리 같은 전문가들도 한 단체를 이해하고 쓸만한 조언을 해주려면 여러 각도에서 요모조모 뜯어보아야 한다. 미션과 고유목적사업, 비전 등등이 다를 뿐만 아니라 법인을 관할하는 관청도 제각각, 규율하는 법령칙도 수백 개다. 심지어 담당 공무원들도 업무를 맡고 나서 다른 부서로 자리를 옮길 때까지도 이 내용을 다 이해 못하니 하물며 일반인들이랴.

 

좋은 비영리 단체가 어떤 단체인지 프로토타입을 제시하기 어렵다. 좋은 비영리는 고사하고 비영리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서 할 것들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기업이 돈 벌어 벤츠를 사든 요트를 사든 아무도 뭐라 하지 않지만 비영리는 그래서는 안 된다. 해야 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은 수두룩하며, 대체로 가진 돈은 별로 없다. 한 마디로 난맥이다.

 

이렇게 복잡한 맥락을 떠안고 사는 비영리단체가 어떤 오해를 받게 될 때는 필연적이고 복잡한, 연쇄적인, 그리고 구조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내 탓이 아니라고 우기는 얘기가 아니다. 잘못한 것은 사실 확인을 하면되고 바로 잡으면 된다. 다만 제대로 개선하려면 먼저 진단을 바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단이 잘못되면 처방도 잘못된다.

 

좀 오래된 얘기지만 과거에 군대 의무실에는 약이 2가지만 있었단다. 배 아프면 소화제, 머리 아프면 진통제. 어떤 군인이 맹장염이 걸렸는데 진단은 하지 않고(할 수 없었고 가 맞겠다) 소화제를 처방했다는 것이다. 생사람 잡는 일이다.

 

요즘 비영리가 투명하지 않으니 회계관리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 이와 비슷하다. 비영리 투명성 이슈는 구조적인 것이 깔려 있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매번 비슷한 사건이 등장을 하는데도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NPO(비영리단체: non-profit organization)

NGO(비정부기구: non-government organization)

제3섹터(1섹터는 정부, 2섹터는 기업, 3섹터는 정부나 기업활동이 아닌 모든 자율적 민간활동영역을 통칭)

기타 등등

명칭은 여러 가지지만 사익이 아닌 공익을 추구한다는 뜻에서 공익단체,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뜻에서 비영리라는 표현을 흔히 쓴다.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돈을 멀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주된 목적이 돈이 아니라는 말이다.

 

비영리는 생각보다 가까이 있어 남의 일이 아니다. 고아원이나 보육원, 입양시설뿐만 아니다. ‘유치원, 대학과 사립학교, 대안학교, 방과후교실이나 자원봉사, 치매어르신 지원, 요양시설, 장애인 지원, 공연, 미술 관람, 극장, 버스킹 활동, 헌혈, 병원, 보건, 재난 등이 다 비영리 활동이며 이 혜택을 시민이 누린다. 또 미혼모, 한부모가족, 독거노인, 노숙자 지원 등 삶이 파괴된 우리 이웃들이 살아가도록 돕는 일, 누군가 당할 수 있는 불의의 사고의 피해자들을 돌보며, 미래 세대에게 건강한 지구환경을 물려주기 위해 환경을 가꾸고 동물과 숲을 보호하는 일까지 구석구석 비영리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영리는 정부가 다 하기 어렵거나 실패한 영역에서 정부 도움을 거의 받지 않은 채 자력으로, 누군가의 헌신을 통해 스스로를 불태우면서 일한다. 이유는 하나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과 이 땅의 소중한 한 생명과 바르고 정의로우며 공정한 사회와 이 나라를 위해서.

 

만약 우리 사회에 비영리가 없다면, 그리고, 정부와 기업만 있다면 어떨까. 간단하게 우리 기억을 1960~70년대로 되돌려보면 된다. 참 숨 막히고 말도 안 되는, 아쉬운 것 투성이인 세상이 비영리 없는 세상일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 비영리단체가 몇 개나 될까. 재단법인이나 사단법인, 사회복지법인, 학교법인 등 정부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공익법인만 해도 무려 9,600개가 넘는다(2019년도 기준, 국세청 자료). 법인이 아닌 등록되지 않은 단체까지 합치면 십만 개를 넘는다는 추측도 있다(어찌 보면 이런 세상에서 산다는 것은 참 복이다).

 

코로나 19가 터지기 전에는 일상의 소중함을 몰랐는데 이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다고들 한다. 평소에는 몰랐는데 문제가 불거지면 비영리 존재감이 살아난다.

 

꼭지 2. 비영리 사람들, 누구인가?

비영리 사람들은 타인과 사회에 대해 관심을 갖고 문제에 도전하는 사람들이다. 오지랖이 넓다. 문제를 보고 지나치지 못한다. 관심사와 정도 차이는 있지만 개인적 희생이 있는 사람들이다. 매 맞을 줄 알면서 기꺼이 앞장선다. 원래부터 그런 사람들이니 일하는 방식이 다소 자유롭고 경계를 넘나 든다. 안 해본 길, 안 가본 길이라고 멈추지 않는다. 경향성에 관한 이야기이고, 100% 다 그런 것은 아니니 반증하지 않아도 된다.

 

정의연도 이런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처음에는. 누군가는 ’과거사의 청산이라니‘ 그게 단체가 할 일이냐고, 정부의 외교적 입장을 곤란하게 하는 일이 아니냐고 비난할 수도 있다. 그런데 상상력을 동원해보면, 아무도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계란으로 바위 치는 식으로, 일본의 저 후안무치(厚顔無恥)의 대응에 대해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집회를 하고 시민들과 눈과 귀를 열고 심신이 지친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로하고 설득하며, 역사를 모르는 젊은 세대들에게 과거를 일깨우며, 개인의 영달을 포기하고 오랜 시간 찬바람 맞으며 일한 이들 중의 하나가 윤미향 전 이사장이었을 것 같다. 적어도 처음에는. 분명 그들이 해결해야 할 중대한 문제 때문에 기꺼이 자신과 가족들의 희생과 포기가 있얼을 것이다. 적어도 처음에는…

 

[누군가 지금 나더러 정의연 감싸는 것에 대해 진보의 편을 드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거꾸로 묻겠다. 그러면 일본이 우리 민족과 우리의 순진한 여인들과 딸들에게 저지른 것이 옳은 것이었냐고. 나는 스스로 보수 성향의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무너진 우리 역사와 민족의 얼을 바로 세우는 데는 진영논리는 잠시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아무리 티격태격해도 시간은 모든 것을 가르고 후대는 진실을 알게 될 것이다.]

 

위안부 할머니들과 윤 전 이사장과 정의연이 1991년도부터 노력해 온 것이 무슨 눈에 보이는 변화와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이 그들의 잘못은 아니다. 누가 보더라도 아베 총리는 뻔뻔하고, 일본은 어떤 이유로든 반성하려고 하지 않을 태도니까. 정의연 사람들은 이 사태를 겪고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치열하게 다투고 논쟁해서 앞으로 또 어떻게 과거사 청산 문제를 진일보시킬 것인지 노력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 그리고 시민들 입장에서는, 이 일이 옳다고 생각된다면 냉정하게 판단해서 이 활동이 무너지지 않고 힘을 낼 수 있도록 지지하고 연대해주어야 한다.

 

다만, 그 목적 달성을 위해서 어떤 전술을 쓸 것인지에 대해서는 내부뿐만 아니라 여러 이해관계자가 왈가왈부할 수 있다. 지금 이용수 할머니의 이의 제기는 내 보기에는 전술의 선택 과정에서 입장차의 문제이다. 할머니의 주장에 따르면 윤미향 씨가 정치가 아니라 현장에서 끝까지 매진하기를 바라고 수요집회 방식을 다르게 하기를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만 그 의견 전달 방식이 너무 갑작스러웠고, 언론을 통해 터트렸기 때문에 내부 문제가 전국민적 이슈가 되었다(오늘 기사에 따르면 할머니는 1년 이상 고민하셨다고 하니 분명 어떤 복잡한 사연이 있을 것이고 잡음이 계속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언론과 국민이 집중하게 된 것은 정작 그 본질적 내용이 아니라 부정한 회계문제라서 더욱 안타깝다.) 투명성은 분명 해결해야할 문제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 숨어있는 원인과 영향 요소들을 점검하지 않고 성급한 처방을 내리지 않아야 한다.

 

*이 글을 쓰고나서 언론을 통해 계속 밝혀진 내용을 보면 윤미향 이사장과 정의연은 실제로 투명성과 책무성에 대한 개념과 의식이 거의 없었다고 보인다. 마주 대하기 두려운 사실이지만 교육과 제도의 부족으로 이런 비슷한 상황들이 다른 시민든체들에 또 재연되고 있지 않을까 걱정이다.

 

꼭지 3. 비영리의 돈, 재정 원천과 운영 방식

비영리의 재정 문제에 대해서 나는 2박 3일 이상 떠들 자신이 있다. 그만큼 비영리 재정문제는, 개별 단체들에게 곪아 터진 아픈 문제이고, 비영리 종사자들을 주눅 들게 하고, 단체의 적극성을 떨어뜨리는 문제인 데다가 이를 해결하는 데는 단체 뿐만 아니라 정부와 시민들의 인식이 중요한 가름대가 된다.

 

오해하지 마라. 비영리가 곪았다는 것이 아니라 이 문제가 하도 오래되서 너덜너덜해졌다는 거다.

 

(내가 모금을 오래 한 사람으로서 한국모금가협회에서 일하기로 마음먹은 이유이기도 하다. 누군가 문제의식 있는 사람이 수십 년 동안 고집스럽게 구조적은 문제를 지적하고 대안을 마련하고 요구하면서 오래 버텨내야 할 일이라 나도 오래 버텨내야만 한다.)

 

기부금의 원칙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간략하게 비영리의 자정 원천에 대해 설명하겠다.

 

비영리는 무엇으로 일하는가? 현대사회에서 생산요소는 노동과 자본, 즉 인력과 예산이라고 한다. 비영리도 마찬가지다. 인력과 예산이 없으면 천하장사도 감당할 재간이 없다. 무슨 일을 벌이기 전에 충분한 인력과 자본을 확보할 것을 권장한다. 그래서 공익법인이 세워질 때도, 발기인의 인원수나 기본재산의 유무를 엄격히 심사한다. 조직을 유지시킬 수 있는 기본 체력이 되는지를 따진다.

 

비영리는 돈이 목표가 아니다. 돈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이며, 결코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돈을 좇지 않으니 늘 가난하다. 지나친 가난과 궁핍은 인간의 의지와 고결성을 파괴시킨다. 너무 가난하면 원래해야 할 일보다도 돈 버는 일에 더 힘을 쏟기 마련이다. 비영리는 돈 버는데 혈안이 되어서도 안되지만 너무 굶주려도 안 된다. 헌신된 사람들이라 해도 돈에 영혼을 팔고 싶은 유혹에 흔들릴 정도로 궁핍해서는 안된다. 너무 넉넉할 필요도 없지만 너무 힘들지 않을, 검소한 생활을 한다면 마음만은 부자로 지낼 수 있는 정도의 보수는 참 중요하다. 그래야 공정하고, 공평하고, 권력에 지배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다. 탐심의 문제가 아니라 보호의 문제이다. 이들의 선한 양심이 침해당하지 않을 수 있도록 사회와 기부자들이 지탱해주어야 한다.

 

어떤 영화에서는 경찰이나 형사들이 정직하지 않은 뒷거래를 하는 집단으로 비취기도 한다. 애당초 남들이 가지 않는 험한 직업을 선택했을 때 시민의 지팡이로 일하겠다는 일념이 없었을까. 분명 그들은 고결한 목적으로 그 길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런데 궁핍함은 사람을 찌들게 하고 변질시키는 힘이 있어 어쩔 수 없이(?) 타협하는 이들이 생기기도 한다. 그런 이들이 많이 생긴다는 것은 구조적인 문제일 수 있고 그 처우나 조건을 개선하는 것이 바른 대안일 것이다. 비영리도 마찬가지이다. 비영리 사람들을 너무 궁핍하게 만드는 것은 간혹 사람들을 유혹받고 타락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투명성의 이슈는 이런 것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구조에 대해 이해가 없다. 그래서 기부금이 직접 사업경비로만 쓰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코 아니다. 오히려 기부금을 100% 직접 사업비로 사용한다고 하는 곳들을 주의해서 보아야한다. 법인의 수입 없이도 인건비 지급이나 운영에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로 재정이 넉넉한 곳이거나, 아니면 무언가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사람이 하는 일인데 어찌 공짜로 책임있는 맡기는가? 하루 이틀 할 일도 아닌데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남이 만들어 놓은 일을 그대로 전수 받아 답습하는 일도 녹록치 않은데 하물며 아무 것도 없는데서 변화를 일구어 내는 일은 말 할 것도 없다. 경험 없고 책임감이 결여된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이고 엄청난 맷집이 필요한 일이다.

 

비영리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동기부여된 좋은 사람이 변질되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켜낼 수 있도록 지탱시켜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기부금은 비영리 사람들이 당당하고 올곧게 신념을 지키며 일하게 하는 힘이 되고, 힘겹고 어려워도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책무성이 된다.

 

비영리의 재정 원천은 크게 4~5가지로 본다. 정부보조금(복권기금 등도 여기 포함된다), 기업의 지원금, 사업의 수익금(이용자 부담금), 자산의 수익금(건물 임대수익 등), 회비 또는 기부금이 있다. 이 재정들은 미션과 목적사업 수행의 연료이다.

 

대학의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 대학의 재정 원천은 대부분 등록금(이용자 부담금), 법인 전입금(자산 수익금 등)이나 정부 지원금으로 이루어지는데, 등록금과 정부지원금은 대학의 딱 1년 살림살이 비용이고 법인 전입금은 쥐꼬리 만한 돈이니 우리나라 대학에 연구 투자를 위한 여력은 거의 없다. 한 푼의 투자도 없이 국제 수준에서 학문적 쾌거를 이루고 국제 수준의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것은 거짓이다. 투자는커녕 우리 사회는 한동안 반값 등록금 바람이 불어 대학 살림살이가 반토막 나서 현상 유지도 어려워졌고, 대학의 질도 떨어졌으며 시간강사 등 후속 학문세대의 처지도 악화되었다. 대학들은 지금 끙끙 앓는다. 그래서 대학은 모금을 해야 하는데… 사람들이 대학 재정지원의 중요성을 잘 모르기 때문에 기부금 모금은 늘 어렵다. 대학을 지원하는 것은 우리 자녀들과 20년 후의 우리나라에 대한 투자이다. 비전이 있는 대학에는 투자를 해야한다.

 

비영리 단체의 돈은 다 같은 돈이 아니다. 돈에 꼬리표를 달고 그 쓰임새를 결정하는 주인들이 다 따로 있다. 돈의 주인은? 정부나 기업이나 재단, 그리고 고액기부자 등이다. 대체로 그 주인들은 돈을 한 번에 주지 않는다. 조금씩 쪼개서 주는 쌈짓돈을 받아 쓰는 단체의 입장에서는 각각의 요구와 취향을 맞추려니 이만저만 힘이 드는 것이 아니다.

 

10개의 주체로부터 돈을 받으면 돈이 크든 작든 10개의 통장을 만들어야 하고 10개의 장부를 만들어야 하고 10명의 주인들로부터 각각 다른 돈 사용 방식과 장부기입 방식을 받아 써야 하며, 각각의 규칙을 학습해야 한다. 심지어 그 규칙들은 매년 달라진다. 이정도 되면 이미 단체들은 회계 규칙이상의 옥죄임을 이미 경험하는 셈이다. 남의 돈 안 받고 싶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단체가 여력이 있어서 유능한 재무 회계전문가를 채용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비루한 박봉을 받으려고 회계사 자격증을 따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게 까다롭고 어려운 돈이라도 따내는 단체는 그나마 다행이고 대부분의 단체들은 열악하다.

 

그나마 제일 제약이 덜한 것이 기부금인데 기부금 받는 일은 약간의 노하우와 지식과 디테일이 필요하고 영업력이 동원되어야 하니 체질이 맞지 않다. 단체들은 결국 까다롭지만 상대적으로 쉽게 구할 수 있는 돈에 먼저 손을 벌린다. 그리고 다시 엄청난 행정부 담을 뒤집어 쓰게 된다.

 

원래 집중해야 할 목적사업을 위해서 돈이 필요했는데, 돈 준 이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목적사업 수행에 집중할 시간을 돈 관리에 다 쓰게 된다. 야근은 매일이고, 월급은 박봉이고, 최선을 다해도 실수는 나오며, 목돈 들여 자동시스템을 도입하거나 외부에 감사를 맡길 형편은 못되는데 어디 딱히 물어볼 것도 없어서 어떻게 어떻게 혼자 공부하고 노력해서 만든 재정보고서는 엉터리가 돼버리기 십상이고 이것은 투명성 이슈로 되돌아온다. 참담하다. 혼자 노력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이 또한 비영리 투명성에 부정적인 효과를 주는 요인이 된다.

 

사정이 이러이러하고 상투 자루를 남들이 잡고 있으니 우리 비영리가 투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아니다. 투명성 이슈는 간단하지 않음을 말하려고 하는 거다.

 

많은 분들이 투명성 해법을 뭐라고 생각하는지 짧게 얘기해 달라고 한다. 투명성은 문화이고 행동양식이다. 무슨 틀을 하나 만들어서 찍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도깨비방망이로 법안 하나 뚝딱 만들어 처리할 일도 아니다.

 

투명성을 들이대기 이전에 자원 제공자들이 먼저 생각과 제도를 바꿔야 한다. 단체들이 돈을 잘못 쓸 것이라는 굳은 신념을 전제로 해서 온갖 지침을 수십 페이지 만들어서 숨통을 틀어막는 식의 관리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단체들의 인식과 행동양식을 세련되게 하려면 변화할 수 있는 여력을 만들어 주고 여러 가지 지원을 통해 중간 과정을 만들어주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정신이 하나도 없이 바쁜데, 정신 차리라고 말만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오랫동안 정부에게 이 일을 해야 한다고 떠들었어도 여태 못한 것을 보면 정부는 할 마음이 없다. 당장 성과낼 일이 아니면 하지 않겠다는 것이 거나, 비영리 사람들이 모래알 같아서 각자 자기 일 아니면 목소리를 모으지 않아서 정부가 보기에 큰일날 세력은 아닌 걸로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비영리 영역 언저리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이제 울타리 밖에서 벌어지는 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거시적인 일은 누군가 남이 하겠지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결국 정부는 표를 의식할테니 말이다.

 

바라건대 의식 있는 한 개인 투자자라든지 그나마 전략적으로 비영리를 지원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어느 한 기업 주체가 비영리 생태계와 문화에 간접 투자한다면, 이는 우리 사회의 전향적인 변화와 엄청난 임팩트를 가져올 것이며, 미국의 록펠러재단이나 포드재단 같은 사례가 될 것 같다.

 

<To be continued>

6 Comments

  1. 남경보 댓글:

    글 쓰시기 힘드셨겠네요.

    “개인의 영달을 포기하고 오랜 시간 찬바람 맞으며 일한 이들 중의 하나가 윤미향 전 이사장이었을 것 같다.” 이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으셨을텐데..

    정의연의 목적 중 하나가 역사를 왜곡하고 부정하기 위해 할머니들을 모독하고 부정하는 일본의 실태를 알리고 비판하기 위함이죠?

    그런 일본의 작태와 지금의 정의연의 모습이 뭐가 다르가요? 단순히 회계미숙이나 부정, 투명성의 문제를 넘어선 본질적으로 뭔가 나사 빠진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요?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할머니들을 활용한 것까지는 비영리 현실 어쩌고 저쩌고 해서 이해한다고 해도, 이건 도가 지나쳤어요. 그걸 많은 사람들이 느낀 겁니다.

    • 오이삭 댓글:

      글 쓰신분의 의도를 잘 이해한건지 모르겠지만 정의연을 지지하는것이아닌 후원금사용의 어려움과 비영리단체 종사자들의 노고를 얘기하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정의연또한 예전에는 그런사람이였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현재의 모습은 부적절한 것이 맞는 거겠죠. 그것을 부정하는 얘기를 없는걸로 보입니다.
      제가 이해한 바로는 정의연에 대한 지지가 아닌 이 일로인해서 비영리단체들이 욕을 먹는것에 대한 우려 혹은 후원금을 사용하는 것에대한 또는 후원금이 없이는 발전할 수 없는 현 상황에대한 얘기를 하고자 하시는 것 같습니다.

      정의연이 잘못했다는 것에대한 비판은 하되 그것이 그 사업자체에 대한 비판으로 번져서는 안되고 올바른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자리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2. 정연희 댓글:

    칼럼을 잘 보고 있습니다. 정말 마음이 아프고 아픕니다.
    하지만 성장에는 성장통이 있다고 믿기에 이 또한 한단계 올라서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다음 칼럼을 기다리며 답글 남깁니다.

  3. 안진우 댓글:

    보내주시는 칼럼 쭉 잘보고 있습니다. 오늘 칼럼 보면서 가슴이 찡하면서도 비영리활동에 대한 근육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내심들게 되었습니다. 정말 마음은 있는데 몸과 머리가 잘 움직여주지 않아서 실수하거나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말씀 다시 한 번 새기겠습니다. 그리고 정말 내 안의 일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울타리 밖 일에도 관심가져야겠습니다. 오늘 칼럼에는 오타가 조금 있어서 이해되지 않는 문맥이 조금 있었습니다. 한 번 수정 부탁드리고요. 다음 칼럼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4. 김영윤 댓글:

    쓰신 칼럼 100% 이해하고 동의합니다. 다만 한가지 공과 사의 구분. 이것이 중요하죠. 그것은 양심하고도 관련이 있는 것이고요. 양심에 비추어 부끄러운 일을 했다면 사과를 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것을 반드시 법의 잣대로 심판할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요?

  5. 최재영 댓글:

    오히려 기부금을 100% 직접 사업비로 사용한다고 하는 곳들을 주의해서 보아야한다. 법인의 수입 없이도 인건비 지급이나 운영에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로 재정이 넉넉한 곳이거나, 아니면 무언가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사람이 하는 일인데 어찌 공짜로 책임있는 맡기는가? 하루 이틀 할 일도 아닌데…

    이 단락은 상당한 오해가 있을 것 같아 적습니다. 저희 재단은 기부금이 적지만 100% 목적사업에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치 나쁜일을 한것처럼 작성되어 있어 심히 유감입니다.
    이럴수도 있고, 저럴수도 있다는 의견을 제시해주어야 하는데 그런문맥이 아니라 나쁜의도가 있다는 글인것 같습니다.
    기부금을 100% 목적사업에 쓰고 기타 운영비를 최대한 줄여서 사용하고자 하는 저희 같은 재단에서는 불쾌한 기분이 듭니다.
    문구를 수정해주시면 좋을 듯 합니다. 저희의 노력과 봉사가 안타깝습니다. 정확한 정보를 줘야 하는데 한쪽으로 치우친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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