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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부금 경제 개혁, 아직 갈 길이 멀다

 2010년대 중후반 공익에 대한 사회 믿음을 깨뜨리는 사건들이 잇따라 발생했다. K스포츠재단과 미르재단 특혜, 새희망씨앗과 어금니아빠 사건 등 공익 모금으로 포장된 사기 행각들은 공익활동의 순수성을 훼손하기에 충분했다. 때마침 공인회계사들의 회계 투명성 문제 제기는 공익법인 관리·감독 기준 강화에 명분이 됐다. 몇 년간 기획재정부는 공익법인 회계기준을 만들고 기부금 관리기준을 통일시키면서 공익 분야에 회계 투명성을 요구했다. 이에 단체들은 녹록지 않은 현실에서도 경각심을 가지고 호응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한편 회계 투명성과는 별도로 기부금 모금에도 의혹이 불거졌다. 이번에는 국회에서 행정안전부 소관인 기부금품법 개정을 통해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행법이 기부금 투명성을 규율하기에 충분치 않아 규제를 높이자는 것이다. 언뜻 들으면 매우 타당하게 들린다. 그렇지만 모금을 해본 이들은 이런 접근이 시대착오적이며 더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한다. 우물가서 숭늉 찾는 격이라는 것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모금은 숫자를 다루는 회계와는 달리 ‘다양하고 복합적인 현장 상황을 수반하는 활동’이라서 하나의 잣대로 옳고 그름을 판별하기 어렵다. 오늘의 비영리 활동은 그 옛날 가난했던 나라에서 먹고 사는 일을 염려하던 시절의 모습과 다르다. 활동 분야와 내용, 종사자 인구, 그리고 파급효과는 엄청나게 확장했다. 국가 경제에서 공익재정의 비중도 상당해졌고, 지역사회의 조직화된 활동 주체이자 정부와 기업의 파트너로서 날로 전문화되고 있다. 이 모든 활동을 뒷받침하는 기부금 모금은 기업들의 마케팅 활동과도 유사한 것이라서 ‘속임수’가 아니라면 거의 모든 활동이 다 활용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면 활동과 전화, TV나 라디오, 신문과 매거진, 소셜미디어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한 홍보와 후원 요청이 진행되고 있다. 더불어 각종 캠페인, 콜라보레이션, 코즈마케팅, 크라우드펀딩 등 수십, 수백 가지의 활동과 프로그램이 모금과 연결돼 있다. 게다가 모금은 시대상을 반영해 빠르게 변화한다. 기술 발전과 사회 풍속의 변화에 따라 가장 트렌디하고 현실적인 이슈들이 모금에 담기게 되면서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띤다.

 기부금품법은 모금 활동으로 시민이 위협당할 수 있다고 판단한 1951년 모금금지법으로 출발했다. 1990년대 모금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모금제한법을 거쳐 현재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로 부분 개정됐지만, 여전히 모금을 강력하게 통제한다는 틀을 유지한다. 이 법의 통제가 몹시 불편한 것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가 있다. 이 법 제3조에는 법 적용의 예외를 두어 자유로운 모금을 허용하는데, 매년 국회의 법률 개정안에는 이 예외 사항 적용을 신청하는 의원들의 개정 발의가 올라오고 있다. 올해는 지자체의 모금 활동인 고향사랑기부제를 예외 사항으로 인정해서 적용하고 있다. 민간 모금에 대한 규제는 강화하면서 정부 모금에는 규제하지 않는 특혜를 제공하니 형평에도 맞지 않고 투명성을 강화한다는 논리에도 어긋난다.

 정부 모금에 대한 특혜에 불만을 제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법의 효용성을 따지는 것이다. 현재 기부금품법은 정말 규율해야 하는 잘못된 행위에 대해서는 처벌도 규율도 할 수 없는 상태다. 그런데 시민의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형식적인 개정 논의만 계속되고, 결과적으로 멀쩡히 일 잘하는 공익단체에만 부담이 늘어간다. 법이 법다워지려면, 첫째 규율하는 내용이 명확하고 허용과 금지의 경계가 선명해야 한다. 둘째, 법 위반의 기준을 명확히 하고 위반한 대상에 대해 엄격한 처벌을 명시함으로써 법 준수를 유도해야 한다. 셋째, 실제 이 법의 정의를 구현할 현실적인 거버넌스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현재 기부금품법은 이 세 가지 조건의 어느 하나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규율 내용도 해석의 여지가 분분하고, 위반하더라도 처벌하기 어려운 구조다. 주무 부처의 규모나 할당된 인력, 예산은 주민센터 수준에 머물러 있어 장기적인 개선을 추구하기 어렵다. 정부도, 의회도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들은 복잡하고 거추장스러우니 민간단체들의 정보 공개를 운운하는 수준에서 법 개정 논의를 한다.

 기부금은 더 이상 시민 몇 사람의 쌈짓돈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가난하든 부유하든, 젊은이든 노인이든 기부에서 멀리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제는 진짜로 건전한 기부문화를 만들어 가야 할 때가 됐다. 이를 위해서는 원점에서 국가 기부금 경제의 현실을 반영한 기본법을 만들고 균형 잡힌 개념과 운영 제도를 마련한 후에 규율과 통제로 보완해야 한다. 문제는 해결의 주체를 누구로 할 지다. 국가 기부금 경제를 주도할 실질적인 거버넌스 구축이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형국이니 갈 길이 멀다.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

조선일보 공익세션 더나은미래_[모금하는사람들] 기부금 경제 개혁, 아직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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